믿음으로 사는 삶

다윗의 광야는 피난처가 아니라 하나님의 건국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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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광야 생활을 읽을 때마다 안타까웠다.

이미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인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사울에게 쫓겨 다녀야 했을까.

왕이 될 사람이라면 왕궁에서 정치도 배우고
통치도 배우고
좋은 사람들과 인맥도 쌓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오늘 다윗의 삶을 다시 보다가
문득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광야는 다윗의 인생에서 없어도 될 고난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했던 하나님의 보호막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하나님은 광야에서
다윗 한 사람만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 아니었다.

왕도 만들고 계셨고,
그 왕과 함께 나라를 세울 사람들도 만들고 계셨다.


광야는 다윗을 사울에게서만 보호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다윗의 광야 생활을
“사울에게 쫓긴 고난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맞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보면
광야는 다윗의 자유를 엄청나게 제한했던 시간이기도 하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고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도 없다.

항상 쫓기고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하나님께 물어야 했다.

그런데 왕이 된 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무엘하 11장을 보면
“왕들이 출전할 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왕궁 옥상을 거닐다 밧세바를 보게 된다.

예전에는 원하는 것을 가질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왕이었다.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할 수도 있었고
데려오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으며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명령까지 내릴 수 있었다.

결국 밧세바 사건은 단순한 성적인 범죄만이 아니었다.

욕망과 권력이 결합했을 때 한 인간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에게서만 보호하신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다윗 자신에게서도 보호하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성경이 “다윗이 죄를 짓지 못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광야에 보내셨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윗의 삶에는
하나님이 실제로 죄를 막아주신 장면이 있다.

나발에게 모욕을 당한 다윗은 분노하여
그 집안의 남자들을 죽이려고 했다.

그때 아비가일이 다윗 앞을 막는다.

그리고 다윗은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을 보내
자기가 피를 흘리고 직접 보복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막으셨다는 것을.

다윗에게는 때때로
‘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였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게 없는 것,
열리지 않는 길,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환경을
무조건 저주라고 생각하지만

훗날 돌아보면 그것이
나를 지키고 있었던 하나님의 울타리였을 수도 있다.


솔로몬을 보니 광야의 의미가 더 크게 보였다

이 생각을 하다가 솔로몬이 떠올랐다.

솔로몬에게는 아내 700명과 첩 300명이 있었다.

무려 천 명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 많은 여인들이 결국
솔로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했다고 기록한다.

다윗이라고 인간적인 욕망이 약했던 사람은 아니다.

다윗 역시 여러 아내와 첩을 두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본래부터 욕망을 초월한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광야 시절에는
그 욕망을 마음대로 펼칠 환경 자체가 없었다.

그는 도망자였고
매일 생존해야 했다.

광야는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다윗은 배웠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법보다
하나님께 묻는 법을.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왕이 되기 전에 반드시 필요했던 훈련이었는지도 모른다.


광야가 없었다면 다윗이 성전을 그토록 사랑했을까

또 하나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다윗에게 광야가 없었다면
그가 하나님의 성소를 그토록 사모했을까.

시편 63편의 표제는
‘다윗이 유다 광야에 있을 때’라고 되어 있다.

물이 없는 황폐한 땅에서
다윗이 가장 갈망한 것은 놀랍게도 물만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을 갈망했다.

그리고 성소에서 보았던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기억했다.

광야에 있으니
성소가 얼마나 귀한 곳인지 알게 된 것이다.

늘 가까이 있을 때는 몰랐던 것을
멀어지고 나서 알게 되었다.

왕이 된 후 다윗은 좋은 백향목 왕궁에 살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나는 이렇게 좋은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천막 가운데 있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싶어 한다.

성전 건축은 결국 솔로몬이 했지만
그 성전을 사모하고
준비하고
재료를 모으고
예배 체계를 정비한 사람은 다윗이었다.

그래서 나는 광야와 성전을 따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그토록 목말라 했던 사람이었기에
왕궁에서도 하나님의 집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광야는 다윗에게
좋은 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쳤다.

결핍은 그의 욕망을 제한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키웠다.


그런데 하나님은 광야에서 다윗 한 사람만 훈련시키지 않으셨다

아둘람 굴에 숨어 있던 다윗에게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면면이 화려하지 않다.

환난 당한 사람,
빚진 사람,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

약 400명이 다윗에게 모였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왕국을 만들기 위한 엘리트 창업 멤버와는 거리가 멀다.

세상에서 밀려나고
상처 입고
인생이 꼬인 사람들이었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당시 사회에서는 ‘시정잡배’처럼 보였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이 사람들이 훗날
‘다윗의 용사들’이 된다.

나라를 세우고
왕을 지키고
이스라엘의 왕국을 견고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된다.

세상에서 설 자리가 없어 광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의 개국공신과 같은 사람들이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광야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다윗은 실패자들을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다윗과 함께 한 이들이 

다윗을 통해 예배하는 모습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문자 그대로 모두 ‘예배자’가 되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들에게 일어난 변화는 놀랍다.

처음에는 자기 생존이 가장 급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다윗과 광야를 지나면서
왕과 나라를 위해 자기 생명까지 내어놓는 용사들이 된다.

그리고 그들이 매일 보았던 다윗은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께 묻는 사람이었다.

“올라갈까요?”

“싸울까요?”

“저들이 나를 넘겨주겠습니까?”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뜻이 먼저인 삶을
그들은 광야에서 함께 경험했다.

더 놀라운 장면도 있다.

다윗이 베들레헴 우물의 물을 그리워하자
세 용사가 적진을 뚫고 그 물을 길어온다.

그들은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린다.

사람들의 충성이 다윗에게 모였지만
다윗은 그 영광을 다시 하나님께 돌렸다.

나는 이것이 다윗 공동체의 중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지도자의 역할 아닐까.


광야는 다윗의 피난처가 아니라 하나님의 건국학교였다

이렇게 보니
다윗의 광야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권력을 제한하셨고,

그를 죄에서 보호하셨고,

하나님께 묻는 법을 가르치셨고,

성소를 사모하게 하셨고,

환난 당하고 빚지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그에게 보내셨고,

그들을 용사로 변화시키셨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훗날
다윗과 함께 나라를 세웠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광야로 몰아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다윗이 왕궁에 있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을
광야에서 만나게 했다.

참 역설적이다.

사울은 다윗을 왕좌에서 멀리 보내려고 했는데
그 광야가 오히려 왕좌를 준비하는 학교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보인다.

다윗의 광야는 피난처가 아니라
하나님의 건국학교였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왕 한 명을 만들고 계신 것이 아니었다.

왕을 만들고,

왕과 함께 나라를 세울 사람들을 만들고,

그 나라의 중심에 예배를 세우고 계셨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광야도 그렇지 않을까.

왜 이것을 허락하지 않으실까.

왜 길을 막으실까.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실까.

왜 나는 아직 이곳에 있을까.

우리는 광야에서 계속 묻는다.

하지만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제한이
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의 결핍이
내 안의 잘못된 욕망은 줄이고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내 광야에서
나 하나만 준비하고 계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광야에서 만나는 사람들,

함께 울고,

함께 버티고,

함께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훗날 하나님께서 하실 어떤 일을
함께 감당할 사람들이 될지도 모른다.

다윗은 광야에서 왕관을 얻지 못했다.

대신 왕이 되었을 때 함께할 사람들을 얻었다.

성전을 짓지는 못했지만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얻었다.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가지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 묻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광야는 손해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다윗의 시간을 빼앗으신 것이 아니라
다윗의 왕국을 준비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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